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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산을 경험한 이가 전하는 엄마가 되는 방법

Дата публикации: 09-10-2026 01:00:00

난자 나이부터 시험관, 유산, 고위험 임신까지. 임신 가능성을 둘러싼 숫자와 정보 사이에서 내가 뒤늦게 알게 된 것들. 첫아이를 만 39세에 낳았다. 의학적으로는 이미 고령 임신에 해당하는 나이였지만, 임신중독증이나 임신성 당뇨처럼 흔히 고령 임신과 함께 언급되는 합병증은 하나도 없었다. 첫째를 받아주신 교수님도 아이가 돌이 지나면 둘째를 염두에 둬도 된다고 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난임’과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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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자 나이부터 시험관, 유산, 고위험 임신까지. 임신 가능성을 둘러싼 숫자와 정보 사이에서 내가 뒤늦게 알게 된 것들.

첫아이를 만 39세에 낳았다. 의학적으로는 이미 고령 임신에 해당하는 나이였지만, 임신중독증이나 임신성 당뇨처럼 흔히 고령 임신과 함께 언급되는 합병증은 하나도 없었다. 첫째를 받아주신 교수님도 아이가 돌이 지나면 둘째를 염두에 둬도 된다고 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난임’과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한 번 임신에 성공했으니, 둘째 아이 역시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낳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첫아이 때도 임신을 결심하자마자 빠르게 성공하고 싶어서 인공수정(IUI, 자궁 안으로 정자를 직접 주입해 수정 가능성을 높이는 방법)을 선택했다. 둘째를 갖기로 마음먹자마자 다시 산부인과를 찾았는데 웬걸, 이번에는 시험관 시술(IVF, 체외수정)을 권유받았다. 첫아이를 키우고 다음 출산을 망설이는 사이 내 나이는 만 43세가 되어 있었고, 난소 상태와 호르몬 수치도 첫아이 때와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가임기 여성이라 해도 막상 자신의 일이 되기 전까지는 인공수정과 시험관의 차이를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그랬다. 인공수정에서도 배란 유도를 위해 약을 쓰기도 하지만 시험관은 차원이 달랐다. 난소를 자극해 여러 개의 난포를 키우고, 난자를 몸 밖으로 채취한 뒤 정자와 수정시켜 배아를 만든 다음 다시 자궁 안으로 이식한다. 호르몬에 예민한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아도 기분이 좋지 않은데, 거기에 배란 유도 주사와 호르몬의 영향을 받으면 감정이 롤러코스터처럼 출렁이기도 한다. 난소를 과도하게 자극하면 난소 과자극 증후군(OHSS, 난소가 지나치게 커지고 체액이 복강 등에 차는 부작용)으로 복수가 차 고생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우스갯소리로 요즘은 의술이 발달해 시험관은 성공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몇 차에 성공하느냐’의 문제라고 하지 않나. 나는 무엇보다 ‘효율성’을 우선시하는 사람이라 마음먹은 일이 있으면 가능한 한 가장 빠르고 정확한 방법을 찾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첫 번째 시험관이 피검사 단계에서 완전히 실패로 끝나기 전까지는 인공수정에서 시험관으로 넘어가는 것도 별로 두렵지 않았다.

자연 임신과 달리 시험관은 외부의 도움을 받아 배아를 만들고, 배아를 골라 내 몸 안에 넣어 성공 확률을 높인다. 그래서 당연히 쉽게 성공할 줄 알았다. 이전 임신은 큰 문제가 없었고 내가 시험관을 하게 된 건 그저 나이가 좀 더 들었기 때문이라고 여겼으니까. 그런데 결국 임신은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아무리 좋은 배아를 넣어도 착상에 실패하면 결국 임신은 성립되지 않는다. 착상은 여전히 의학적으로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고, 배아의 상태와 자궁내막의 조건, 호르몬과 타이밍 같은 여러 변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실패 역시 임신 테스트기의 한 줄이든, 피검사 결과 문자든 오롯이 내가 먼저, 혼자 받아들이게 된다. 이 부분이 나를 미치게 했다.

시험관은 정말 사람 나름이다. 옵션이 너무 많다. 똑같은 호르몬 수치를 두고도 어디에서는 난임의 지표로 보고, 다른 곳에서는 이 정도면 자연 임신도 가능하다고 했다. 난포가 몇 개 자라는지, 실제 채취한 난자 중 성숙 난자가 몇 개인지, 수정은 몇 개 되는지, 며칠까지 배양이 가능한지에 따라 주사제, 먹는 약, 질정 처방도 달라진다. 내 경우 당시 AMH 수치는 1.82ng/mL였다. AMH(항뮐러관호르몬)는 난소에 남아 있는 난포 수를 간접적으로 추정하는 지표인데, 만 43세라는 나이를 고려하면 ‘지독한 난소 기능 저하(난소호르몬 수치가 낮고 배란이 잘되지 않는 것, 난저)’라고 부를 정도는 아니었고 첫 번째 채취에서는 난자 17개, 두 번째에서는 19개가 나오는 등 내가 처한 상황이 최악은 아니었다. 난소 반응 자체는 나이를 고려하면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난자를 ‘몇 개 뽑느냐’만은 아니었다. 첫 번째 채취에서 얻은 난자로 배아를 만들고 이식했지만 첫 번째 이식은 피검사에서 실패했다. 두 번째 이식에서는 아주 미미하게 임신 수치가 나오긴 했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뒤 다시 한 피검사에서는 임신 실패 판정을 받았다. 흔히 말하는 화학적 임신(착상은 일어났지만 임신이 매우 초기 단계에서 중단되는 경우)이었다. 소파술을 할 정도는 아니고 다음 생리 때 자연스럽게 배출될 것이라고 했다. 내 배아는 자궁벽과 하이 파이브 한 번 하고 헤어진 셈이었다. 아이를 본 적도 없고 심장 소리를 들어본 적도 없는데 유산은 유산이라는 교수님의 설명이 꽤 생경하게 들렸다. 그리고 ‘다음 생리’에는 이전까지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통증과 출혈을 겪었다. 스쳐간 임신은 꽤 선명한 실패의 감각을 남겼다. 교수님도 유산이 반복되는 것은 좋지 않으니 PGT(착상 전 유전 검사)를 통해 염색체 이상 여부를 확인한 배아를 이식하자고 했다. PGT는 배아의 염색체 이상 여부를 이식 전에 확인하는 검사다. 정확한 숫자는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남아 있던 수정란이 10개 정도였던 것 같다. 결과는 전부 비정상이었다. 그 결과를 받고 나서야 너무 단순한 사실 하나를 제대로 이해했다. 내가 43세면 내 난자도 43세인 거다. 내 얼굴이 아무리 젊어 보이고 몸을 아무리 열심히 관리해도 난자는 내가 태어날 때부터 난소에 함께 존재해온 세포다. 외형이 젊다고 해서 난자까지 같이 속아주는 것은 아니었다. 왜 자꾸 실패하느냐고 물었을 때 꽤 단순한 대답이 돌아왔다. “환자분의 실제 나이가 많아서요.” 누가 그걸 몰라? 내가 늙은 건 나도 아는데, 그래서 의술로 뭘 해줄 수는 없다는 거야?

나는 원래 감정적으로 크게 동요하는 사람은 아니다. 내가 늙어서 임신이 잘 안된다는 사실이 슬프기보다는 화가 났다. 실패를 줄이고 싶었다. 반드시 성공하고 싶었다. 병원에서 솔루션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내가 찾는다. 다시 폭풍 검색을 했다. 처음에는 ‘내가 의사보다 잘 알겠어?’ 싶어서 모든 걸 100% 맡겼다면, 실패를 겪고 난 뒤에는 생각이 달라졌다. 내가 의사가 될 수는 없어도 적어도 내 몸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알아야겠다 싶었다. 블로그와 시험관 카페를 들락거렸고, 배아 모양이 어떻고, 등급이 어떤지, 어떤 약을 쓰면 어떤 결과가 있는지 등의 정보를 모았다(지금 돌아보면 내가 그토록 열심히 찾아본 정보 중 가장 쓸데없는 축에 들지 않을까 싶지만). 그래도 그때는 배아 사진이나 내 호르몬 수치에서 어떻게든 성공 가능성을 읽어내고 싶었다. 알고 보니 유명한 난임 병원이라고 해도 각자 잘하는 분야가 달랐다. 어디는 난저 환자에 강하고, 어디는 배양 기술이 좋고, 어디는 동결 기술로 유명했다. 환자마다 맞는 병원도 다르다는 얘기도 들렸다. 내 경우엔 난자 자체는 꽤 많이 확보하는데 그 후 배양과 정상 배아 확보에서 계속 막히는 쪽이었다. 그렇다면 배양이나 동결을 잘하는 병원의 기술로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병원을 옮겼다. 새 병원에서는 이전 검사 결과를 보더니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했다. 심지어 자연 임신도 가능할 수 있다는 소견을 들었다. 같은 숫자를 들고 갔는데 병원이 바뀌니 해석도 달라졌다. 마침 연말 여행을 앞두고 있었다. 여행을 다녀온 뒤 몸을 조금 만들고 다시 배아를 확보해 PGT를 한 다음 이식하기로 했다. 그때의 나는 앞에 놓인 문제가 ‘늙은 난자와 정자’라고 여겨 쉬는 동안 임신에 도움이 된다는 항산화제를 잔뜩 사서 남편과 함께 먹었다. NMN, 이노시톨, 오메가3, 멜라토닌. 난자와 정자 컨디션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 것은 모두 다 챙겼다. 정보의 홍수 앞에서는 건강과 뷰티를 오래 취재해온 나라도 별로 우위에 있지 않았다. 병원에서 추천해준 내용도 있었고 인터넷의 ‘카더라’도 있었지만 닥치는 대로 취했다. 소고기와 아보카도가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매일 불판을 꺼내 고기를 구웠다. 향료가 배아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는 뷰티 제품과 생활용품의 성분을 다시 들여다보고 가능한 건 전부 무향으로 바꿨다. 예전 같으면 ‘근거가 있나?’부터 따졌을 나다. 그런데 임신 앞에서는 교수님의 조언 하나도 허투루 흘려들을 수 없었다. 수면도 중요하다기에 마그네슘과 멜라토닌을 꼭 챙겼다. 아이를 재우러 들어가 밤 10시면 함께 잠들었다. 먹는 것도 신경 썼다. 단순당을 줄이고 음식의 질도 챙기려고 했다. 주사를 시작한다고 해도 이후 일정이 처음부터 딱딱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내가 회사원이었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쪼그라드는 임신 확률과 더 빠르게 쪼그라드는 남은 휴가 날짜를 두고 초조했을 것 같다. 난포가 자라기 시작하면 며칠 간격으로 병원을 찾아 초음파를 보고, 난포 크기를 확인하고, 그 결과에 따라 채취 날짜와 투약 일정이 계속 바뀐다. 정확히 며칠에 한 번 갔는지는 이제 기억이 조금 흐릿하지만 채취가 가까워질수록 병원을 정말 자주 간 건 분명하다. 주사는 정해진 시간에 맞아야 했는데, 아침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돌아와 주사를 놨다. 촬영이 있는 날이면 촬영장 구석에서 몰래 주사를 놓기도 했다. 하루에 2~3대를 맞을 때도 있었고, 각각 맞는 시간이 다르기도 했다. 영양제를 챙겨 먹는 시간도 제각각이었다. 대체로 즉흥적으로 행동하는 P인 나에게는 정말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한번은 배란 유도 주사를 내가 어느 순서로 맞았는지 헷갈려서 난자 채취 자체가 취소되는 건 아닌가 싶어 식은땀을 흘린 적도 있었다. 결국 제대로 맞긴 했다. 블로그를 하도 많이 봤더니 내가 실제로 맞은 주사와 남들이 맞았다는 주사 이름이 머릿속에서 뒤섞여버린 거였다.

돌이켜보면 난임은 질병이면서 질병이 아니다. 하나의 문제를 발견해 그것만 치료하면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엄마 상태와 아빠 상태가 다르고, 난자가 있고 정자가 있고, 그 둘이 만나 배아가 되고, 다시 자궁과 호르몬 영향을 받고, 그 배아가 자궁내막에 안착하는 타이밍이 맞아야만 한다.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하나의 평균적인 프로토콜이라는 것이 없고 성공을 예측하기도 힘들다. 한 번 실패하면 실패한 원인을 유추해 지워나가며 성공률을 높이는 것뿐이다. 결국 내가 했던 것 중 무엇이 실제로 도움이 되었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NMN이었는지, 매일 먹은 소고기였는지, 열심히 잠을 잔 덕분인지, 병원을 옮긴 것이 결정적이었는지 말이다. 그저 그때의 나는 붙잡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뭐든 붙잡고 싶었다. 어쨌든 옮긴 병원에서 난자를 채취해 수정란을 만들고 PGT를 거쳐 단 하나의 정상 배아를 얻었다. 시험관 카페에서 흔히 ‘통배’라고 부르던 배아였다. 나는 쌍둥이를 낳고 싶은 것도 아니었고 셋째 아이를 계획한 것도 아니었다. 더 이상 배아를 모으지 않고 그 하나를 바로 이식했고 그 배아가 착상했다. 시험관 세 번 만에 임신에 성공한 것이다.

결과만 이렇게 써놓으면 간단하다. 시험관은 몸과 정신을 조금씩 잠식하는 일이지만 비교적 적은 횟수에 임신에 성공했고, 성공 직후 나는 꽤 의기양양했다. 주변에서 임신과 출산을 고민하는 친구들을 만나면 당장이라도 시험관 시술을 하라고 종용했다. 아직 미혼이면 난자라도 동결해두라고 했다. 난자의 나이나 정자의 나이는 네 얼굴이 젊고 팽팽한 것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그때의 나는 내가 노화와 싸워 이긴 승자 같았다. 그런데 사실 더 큰일이 남아 있었다. 여자는 왜 자신의 몸과 임신에 이다지도 무지한 걸까? 나는 첫째 제왕절개 이력이 있었고 둘째는 고령에 시험관 임신이었다. 그리고 임신 중 태반이 자궁 경부 입구를 완전히 덮고 있는 완전 전치태반 진단을 받았다. 여러 위험 요인이 겹친 상태였고 주치의는 대학 병원으로 옮기라고 했다. 그런데 이때까지도 나는 전치태반이 얼마나 위험한지 제대로 몰랐다. 당시는 의료 대란이 이어지던 때라 대학 병원으로 전원 신청을 하고도 임신 7개월쯤 되어서야 첫 진료를 볼 수 있었다. 첫아이를 받아준 교수님이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아이는 얼마나 컸느냐고, 사진 좀 보자고 하셔서 보여드렸고, 전치태반이 위험하지만 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하니 낳을 때만 고생하자고 하셨다. 서로 웃으며 진료실을 나왔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집에서 청소를 하고 있었는데 왈칵 피가 쏟아졌다. 고작 차트를 만들고 초진을 받은 지 하루 만인 데다 아직 예정일이 한참 남아 있어 분만실 전화번호조차 모르고 있었다. 대표번호로 전화해 상담원과 통화하며 병원으로 실려 갔고, 아이와 나 모두 위험할 수 있으니 수술방이 잡히는 대로 수술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응급 제왕절개를 했다. 임신 26주 5일째였고 아이는 900g이었다. 수술 중 많은 피를 잃고 수혈을 받았다. 여러 방법을 써도 출혈이 멈추지 않아 자궁동맥 색전술(UAE, 출혈을 줄이기 위해 자궁으로 가는 혈류를 차단하는 시술)과 자궁 내 풍선 압박술(자궁에 풍선을 삽입해 내부에서 출혈 부위를 압박하는 처치)을 받았고, 이후 중환자실과 고위험 산모실을 거쳤다. 밀가루 한 봉지보다 작게 태어난 아이는 엄마 몸속에서 나오자마자 심폐소생술을 받았다고 했다. 이것도 퇴원할 때 받은 서류를 통해서야 알았다. 아이는 약 네 달 동안 신생아집중치료실(NICU)에 있었다. 지금은 무사히 퇴원했고 태어난 지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몇 주에 한 번씩 대학 병원 외래 진료를 받는다.

물론 조산이 100% 나이의 문제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실제 NICU에서 나보다 훨씬 젊은 엄마도 많이 만났다. 다만 나는 그 전까지 어떻게든 임신만 하면 끝이라고 간주했다. 시험관에 그렇게 많은 경우의 수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는데, 임신하고 난 뒤에도 또 별의별 경우의 수가 있었다. 난임 병원에서 임신 확인을 받고 ‘졸업’하던 날에는 가장 어려운 관문을 통과한 것처럼 희열에 차 있었다. 그런데 임신은 또 다른 시작이었다. 이 모든 걸 미리 알았다면 나는 아이를 더 빨리 가지려고 했을까. 마흔한 살만 되었어도 조금은 수월했을까. 첫아이를 받아주신 교수님 말씀대로 첫째가 돌쯤 됐을 때 바로 둘째 계획을 시작했다면 어땠을까. 가끔 돌이켜본다. 그렇다고 이 모든 일을 겪으며 둘째를 낳은 것이, 그토록 고생스러웠던 것이 후회스럽지는 않다. 두 아이가 내게 열어준 세상은 그 모든 과정을 다시 선택하게 할 만큼 새롭고 엄청나다. 다만 이 이야기가 ‘그래서 뭘 먹고, 어떻게 자고, 어느 병원에 가면 임신할 수 있다’는 성공담이나 방법론으로 읽히지는 않았으면 한다. 내가 먹은 영양제 중 무엇이 실제로 도움이 되었는지, 병원을 옮긴 것이 결정적이었는지 지금도 나는 모른다. 내가 확실히 알게 된 것은 다른 쪽이다. 우리는 임신과 출산에 대해 생각보다 너무 적게 알고 있다는 것. 만 43세가 되어서야 AMH가 무엇인지 알았고, 내 난자의 나이가 외모나 체력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했다. 시험관을 시작하고 나서야 난자를 몇 개 채취하는 것과 정상 배아를 얻는 것이 전혀 다른 문제라는 걸 알았고, 유산을 겪고 나서야 임신 테스트기에 두 줄이 뜨는 것과 한 아이가 태어나는 것 사이에 얼마나 많은 단계가 존재하는지 알았다. 어렵게 임신에 성공한 뒤에는 또 전치태반이라는 단어를 처음 배웠다. 왜 이런 것들을 늘 닥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걸까.

학교에서 월경과 피임은 배우지만 난자의 노화나 가임력에 대해서는 얼마나 배우나. 결혼과 출산을 늦게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대인데도, 정작 자신의 생식능력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정확히 알 기회는 많지 않다. 그렇다고 여성에게 아이를 일찍 낳으라고 겁을 주자는 이야기도 아니다. 아이를 낳지 않는 선택 역시 당연히 존중받아야 한다. 다만 알고 선택하는 것과 모르고 선택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나는 첫째를 낳은 뒤 언제든 둘째를 낳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어쩌면 그때 난자와 임신에 대해 조금 더 알았다면 다른 시기에 다른 선택을 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적어도 선택의 근거는 조금 더 많았을 것이다. 임신은 여전히 수많은 숫자로 설명된다. AMH 수치, 난자의 개수, 배아 등급, 피검사 수치, 임신 주수와 아이의 몸무게. 내 경우에는 1.82와 17, 19, 26주 5일, 900g이라는 숫자가 남았다. 하지만 그 숫자들이 의미하는 것을 자신의 몸으로 처음 배워야 하는 순간이 오기 전에 여성에게 그 숫자를 이해할 기회부터 더 많이 주어져야 하지 않을까. 아이를 낳을 것인지 말 것인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적어도 그 선택만큼은 자신의 몸을 충분히 알고 난 뒤 할 수 있어야 한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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